[GJ저널 망치] 울창한 숲속, 나귀 한 마리가 묵묵히 서 있습니다. 그 등 위에 염소가 올라서서 나뭇잎을 따 먹습니다. 사진은 우스꽝스럽지만, 오래 바라보면 웃음보다 먼저 다정함이 보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희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바치는 서약보다, 누군가가 조금 더 멀리 닿을 수 있도록 잠시 몸을 낮추어 주는 일에 가깝지요. 내가 가진 힘과 시간, 자리와 어깨를 잠깐 내어주는 일 말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닿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손을 뻗어도 잎 하나 닿지 않고, 한 걸음이 모자라 기회를 놓치는 ...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8.13[GJ저널 망치] 연일 더위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군요. 오늘은 시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사진 속 하얀 실타래는 눈도, 솜도 아닙니다. ‘헤어 아이스(Hair Ice)’, 우리말로는 ‘서리 수염’이라 불리는 특별한 얼음입니다. 죽은 나무 중 젖은 자리에서 자라나는 이 얼음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부드럽습니다. 비단실 같기도 하고, 솜사탕 같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1918년, 기상학자이자 대륙이동설을 제안한 알프레드 베게너가 처음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는 특정 균류가 이 신비로운 얼음을 만드는 데 ...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7.30[GJ저널 망치]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사진 속 풍경은 그리스 테살리아 평원에 우뚝 솟은 메테오라 수도원입니다. 지상에서 최대 300미터나 치솟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진 수도원은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섬처럼 보입니다. 14세기의 수도사들은 세상과 조금 더 멀어지고,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이 절벽을 택했습니다. 당시에는 접이식 사다리나 그물 바구니에 몸을 맡기는 방법 외에는 오를 길이 없었지요. 불편함은 오히려 수행의 일부였고, 고립은 신앙을 지키는 울타리였습니다. ...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7.16[GJ저널 망치] 언뜻 보면 거대한 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행자 공간을 덮는 곡면 콘크리트 차양입니다. 기둥을 최소화해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햇빛과 비를 막아 주는 구조물입니다. 1950~1970년대 이탈리아는 철근콘크리트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건축가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콘크리트 자체를 하나의 조형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습니다. 기능과 예술이 만난 모더니즘 건축의 한 장면입니다. 이 구조가 강한 이유는 쉘(Shell) 구조에 있습니다. 평평한 판은 쉽게 휘지만, 원통을 ...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7.02[GJ저널 망치]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맥의 아우론조 디 카도레. 해발 2,760m, 몬테 크리스탈로의 가파른 암벽에 작은 석조 건물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마치 산이 품고 있는 둥지처럼 보이는 이 고산 쉼터는 오늘날 등산객들의 안식처이지만, 100여 년 전에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치열하게 맞섰던 전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눈과 바위뿐인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서로를 향해 포격을 가했고, 상대 진지 아래로 터널을 파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때로는 산...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6.18[GJ저널 망치] 런던의 한 지하철역 벤치에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먼저 떠나간 남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시간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편 오스월드는 아내 마거릿의 마음에 커다란 빈자리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깊은 슬픔에 잠긴 마가릿은 남편의 숨결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그가 생전에 녹음했던 지하철 안내방송을 들으러 역으로 향하는 것이었지요. “열차와 승강장 사이를 조심하세요(Mind the g...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6.04[GJ저널 망치] 숲 가장자리에서 사슴 한 마리가 호박 속을 길게 물고 서 있습니다. 조금 우스꽝스럽고, 조금 사랑스러운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이 만들고, 또 이렇게 쉽게 버리는가.” 할로윈 축제가 끝난 뒤 호박들은 대부분 쓰레기가 됩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축제의 상징이던 것들이 순식간에 폐기물로 바뀌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막대한 양의 호박이 생산되지만, 재사용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과 다르게 움직입니다...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5.21[GJ저널 망치] 얼마 전, 저는 ‘위대한 수컷 에뮤’를 떠올렸습니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존재. 그런데 바다에는 그보다 더 극적인 방식을 취하는 생물종이 있습니다. 해마다 같은 질문을 다시 묻게 하는 존재, 해마입니다. 해마는 다른 종과 달리 수컷이 임신을 합니다. 정확히는 그 역할을 대신하지요. 암컷은 자신의 알을 수컷의 배 주머니에 넣고, 수컷은 수정과 부화를 맡습니다. 수컷 해마는 몇 주 동안 산호나 해초에 꼬리를 감고 몸을 지탱한 채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진통을 겪듯 몸을...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5.07[GJ저널 망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도선수는, 어쩌면 개미일 것이다. 눈길을 주지 않으면 존재조차 잊히는 그 미세한 몸으로 자신의 무게를 스무 배, 쉰 배까지 들어 올린다. 힘이란 크기의 문제가 아님을. 그는 말없이 증명한다. 인간은 어떤가. 자기 몸 하나 들어 올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최고의 역도선수라 해도 두 배를 넘기기란 벅차다. 우리는 크기를 자랑하지만, 정작 힘의 비밀에서는 종종 길을 잃는다. 개미는 묻지 않는다. 얼마나 무거운가를. 다만 묵묵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의 무게...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4.23[GJ저널 망치] 물 위와 물 아래, 두 세계를 동시에 걸치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악어입니다. 수면 위로는 거친 비늘과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 위협적이지만, 물속에서는 고요하게 떠 있는 그림자처럼 보이지요. 같은 존재임에도,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답니다. 우리는 흔히 악어를 ‘무자비한 포식자’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 구조와 생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의외의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악어는 음식을 씹지 못합니다. 턱은 강하게 닫히는 데에 특화되어 있지만, 좌우로 움직이며 갈아내는 기능은 없...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4.09[GJ저널 망치] 산업정책은 흔히 기술 경쟁의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산업의 성패는 기술 이전에 이미 입지와 조건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 산업은 공중에서 자라지 않는다. 반드시 특정한 공간 위에 내려앉고, 그 지역이 지닌 자원과 사회적 기반 위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반도체 공장은 단순한 제조시설이 아니다.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 초순수 생산 설비, 고속 물류망, 숙련된 인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도시 기능까지 결합된 거대한 사회적 인...
칼럼 GJ저널망치2026. 04.02[GJ저널 망치] 모기를 보고 감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대개는 손부터 올라가기 마련인데, 그날만큼은 달랐습니다.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던 모기를 바라보다 문득, 이 작은 생물의 구조가 얼마나 정교한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털로 덮인 다리, 가벼운 몸, 낭비 없는 형태. 불편한 존재이지만, 퍼펙트한 하나의 설계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의 사진가 Gil Wizen의 작품입니다. 렌즈를 통해 확대된 모기는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전혀 다른 존재처럼 드...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3.26[GJ저널 망치] 소리를 본다는 말은 결국 귀와 눈이 하나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어떤 매체를 통과하면 우리는 간접적으로 소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리를 낼 때, 몸은 특정한 주파수를 만들어냅니다. 그 주파수가 물질의 형태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사이매틱스(Cymatics)’라고 하지요. 모래나 물 위에 음파를 가하면 일정한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흔적을 남깁니다. 최근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은 소리를 이용해 심장 세포의 배열을 조절하는...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3.12[GJ저널 망치]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버리는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연에는 원래 폐기물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한편 미국의 Rich Earth Institute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이 1년에 배출하는 소변에는 한 해 농사에 쓸 비료가 들어 있다.” 성인은 1년에 약 100~150갤런의 소변을 배출하고, 그 안에는 질소, 인, 칼륨 같은 작물 성장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소변조차 자연 속에서는 완전한 자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도 하나의 ‘이동식 비료 공장’인 셈이지요. ...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2.26[GJ저널 망치] 감자를 보면 여러 사람이 떠오릅니다. 감자를 반으로 자르면 서리가 내린 듯 하얀 속살이 드러나지요. 그 모습을 보면 보성에서 시집오셨던 할머니가 먼저 생각납니다.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찐 감자 냄새, 아무 말 없이 건네주시던 따뜻한 손길이 함께 떠오릅니다. 감자는 제게 추억의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자락의 밭, 강원도 평창의 씨감자, 그리고 대전 연구소 시험농장까지 기억이 이어집니다. 한때 저는 ‘식물조직배양 자동화 연구’에서 감자를 다루었습니다.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연구실의 작은 줄...
포토에세이 GJ저널망치2026. 02.12한광용, 국립광주과학관 ‘2026 전국민 AI 창작 경진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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