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수 사진작가는 4년 동안 적벽을 찍으며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아픔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박철수 사진작가 제공 |
![]() 아침 안개 낀 적벽을 촬영하고 있는 박철수 사진작가. /박철수 사진작가 제공 |
처음 적벽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는 그 풍광에 취했습니다. 가을의 적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동복댐과 이서 수몰민에 대한 역사는 전혀 모른 채 그저 그 풍경에 사로잡혀 찍기 시작했습니다. 적벽을 오가며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몰되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연이 깊은 곳이더군요.
동복댐의 건설과 함께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애환에 대해 알고 나니, 무언가에 씐 것처럼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화순적벽의 사계절과 실향민의 애환을 담은 사진집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4년 동안 애착을 가지고 드나들었더니 적벽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화순적벽이 제 고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 화순적벽(국가명승 제112호), 2021, 박철수 |
사진작가로서 제일로 여기는 자연광은 새벽에 밝아오는 여명과 해질녘 노을빛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주 잠깐, 그 찰나에만 볼 수 있는 귀한 빛입니다. 화순적벽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개방되는 탓에 적벽의 여명도, 노을도 찍을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오가면서 출사 작업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동복댐이주민협회의 김광진 회장을 만나 협조를 구했습니다. 누군가는 화순적벽의 아름다움과 애환을 사진으로 담아 엮어내고, 책으로 펴내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탁드렸습니다. 실력은 없지만, 끈기 있게 해보겠다고 설득했고, 작업하는 내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복댐이주민협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이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 가뭄에 모습을 드러낸 노루목마을 터와 적벽, 2023, 박철수 |
![]() 부들너메의 허물어진 김 씨네 집터, 2023, 박철수 |
지금은 비가 내려서 가뭄이 해소되고 다시 물이 들어찼지만, 한창 출사 작업을 하던 2021년부터 2023년 봄까지는 극심한 가뭄으로 적벽의 옛 모습과 수몰된 마을의 흔적들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연경관은 물론 실향민들이 남겨놓은 크고 작은 흔적, 물이 빠져 드러난 마을의 옛터까지도 보물처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 급수 위기였지만 제 작업에서는 그야말로 ‘때를 맞춘 가뭄’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자연이 실향민들의 애환을 알고 기억해 달라고 물도 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적벽의 모습을 통해 실향민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적벽 여명, 2023, 박철수 |
현장을 담아내는 출사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적벽을 찍는 작업이 그랬듯,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다 보면 ‘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일종의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면 힘들어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모으게 됩니다.
대외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다고 공표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작업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작업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죠.
요즘은 섬진강의 모습을 사진집으로 펴내기 위해 출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정도 사진을 모으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사진을 찍을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지난 2024년 7월 취재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 2022, 박철수 |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12.09 (화) 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