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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충남지사의 사례나 최근 보도되는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스쿨 미투사건에서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성폭력 사건들에서 가해자 무죄의 원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자주 인용되는 근거가 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에 의한 신체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애초에 피해를 호소했던 학생들은 열네 명이었으나 정작 수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응한 학생은 두 명에 그쳤다.
이 사실은 원심에서 판사로 하여금 사건을 가벼이 여겨 무죄를 선고하게 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2심에서는 해석이 달랐다.
다수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못한 것을 두고 ‘피해 여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스승인 피고인으로부터 당한 피해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학교 내외의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리한 처우, 정신적 피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다.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었던 12명도 사건 피해에서 간과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수평적일 수 없는 관계에서 가해자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구성하고 맥락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더해져야 사건의 양면,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한다는 기본적인 원리는 공감능력을 필요로 하는 성인지 감수성이다. 자신의 경험과는 다른, 상대의 입장을 동등한 무게로 다루고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는 경험이 중요하다.
공감능력과 조망능력을 발달시키는 방법은, 부모나 의미 있는 타인이,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인지 감수성의 가장 중요한 또 다른 필수 요소인 ‘차별적 성문화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성과 젠더, 차별과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구성하는 성(sex)과 달리 젠더(gender)는 남성성과 여성성과 같이 성역할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 사회적인 의미의 성을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생겨난 구분이 성차이라면, 이 성차이로 인해 여성과 남성에 대해 생기는 편견, 이 편견으로 발생하는 차별이 성차별이다.
사춘기 이후의 남성과 여성은 신체조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남성은 여성보다 근력이 더 잘 발달한다. 체력조건을 선발기준으로 삼는 채용 과정에서 남자 응시자와 여자 응시자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이 생물학적인 신체조건인 성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확실히 남자들이 원래부터 근성이 있고 성실한데 여자들은 나약하고 끈기가 없어.’라고 한다면 이는 성차별이 되겠다.
뿌리 깊은 유교문화 위에 세워진 한국사회의 근대성은, 근대 문화의 특징인 합리성의 할아버지가 와도 여전히 여성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차별적 성의식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누려왔던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문화는 성차별을 그냥 성 차이로 뭉개며 한 세기를 보냈지만,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인정과 성 평등을 위한 노력은 전 시대를 관통하며 지속돼 왔다.
다행히 현대 국가가 전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더욱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인 인간의 존엄성을 준수해야 하는 역할이 부과되면서 성 평등을 향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경제적 성장과 몰락,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정치적 변화와 문화적 발전이 서구사회에 비해 빠른 속도로 한국사회를 관통했고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전 세계적 바이러스의 감염사태를 맞는 혼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사이 보편적 정의와 합리성, 개인의 욕망이 엉키고 충돌하면서 차별은 첨예화되다 혐오를 낳기도 하고 폭력과 범죄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포괄적 차별’의 개념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논의하는 단계에도 이르렀다.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끔찍한 폭력 범죄가 발생한 후에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같은 법안이 생겨났지만 이 새로운 법안은 다른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는가 하면 ‘소라넷’과 같은 인터넷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솜방망이 처벌은 이후 ‘N번방’의 악마들과 같이 더 잔혹한 디지털 성범죄를 양산하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 염승희 임상심리전문가 |
* 프로필
- 현)광주해바라기센터(아동) 임상심리전문가
- 전남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임상심리전공 박사과정
*본 칼럼은 지난 2020년 12월 작성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12.19 (금) 08: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