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상(貨幣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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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화폐단상(貨幣斷想)

화폐, 모두가 욕망하며 일상적으로 주머니 속에 가까이 하는 물건
어떤 가치 지향과 세계관을 싣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이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지는 것

[GJ저널 망치] 어느 나라든 화폐에 그 나라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물을 새겨 넣기 마련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신의 머리 형태나 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자의 초상을 화폐에 그려 넣게 되었는데 신이나 절대 권력자의 권위로 화폐의 가치를 보증 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도 각 국의 화폐 속의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각기 자국의 긍지와 정체성과 국민적 취향과 국가적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유로화로 통일되었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옛 화폐를 대강 살펴보면 이렇다.

독일은 아르님(5마르크), 가우스(10마르크), 뉴만(50마르크), 메리안(500마르크), 그림 형제(1000마르크) 등이,
프랑스는 드뷔시(20프랑), 쌩떽쥐베리(50프랑), 세잔느(100프랑), 에펠(200프랑), 퀴리 부부(500프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양국은 주로 예술가 학자 건축가 과학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반면에 미국은 워싱턴(1달러), 제퍼슨(2달러), 링컨(5달러), 헤밀턴(10달러), 앤드류 잭슨(20달러), 그랜트(50달러), 프랭클린(100달러) 등 정치가 일색이다. 이들은 미국의 독립이나 건국에 초석을 놓은 인물들로 평가 되지만 인디언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몇몇의 발언을 들어보자.

조지 워싱턴 "우리의 당면 목표는 인디언 마을의 전면 파괴와 유린이다. 기본적으로 토지작물을 파괴하여 더 이상 경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 “지상의 문명인들을 위해서 저 미개인들을 근절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술(알코올)이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앤드류 잭슨 “자유와 문명과 종교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西進하는 찬란한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숲 속에 사는 야만인들에게 그들의 숲과 강과 땅을 빼앗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들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2000만에서 4000만에 달했다고 하는 인디언이 오늘날 200만 정도로 줄어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건국이 인디언의 무차별 대량 학살과 약탈과 정복의 추악한 역사였음을 화폐 속의 인물들은 명백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거침없는 피의 행보는 오늘도 지구의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2004년 발행된 신권은 노구치 히데요(1000엔), 히구치 이치요(5000엔), 후쿠자와 유키치(10000엔)를 새겨 넣고 있다. 구권의 1000엔권(나쓰메 소오세키), 5000엔권(니토베 나조오)의 인물들은 바뀌었지만 10000엔 권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바뀌지 않는 부동의 인물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인가? 흔히 일본의 메이지시대의 최대의 계몽 사상가이며 게이오의숙의 설립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우선 우리와 관련된 그의 발언을 들어보자.

“조선은 야만국이라 평하기보다 오히려 요마악귀妖魔惡鬼의 지옥국이라 말하고 싶다.”(시사신보1885)

“조선은 그 인민을 위해 차라리 멸망하는 편이 낫다.”(시사신보1885)

“일본은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거기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함께하고 지나(중국) 및 조선 역시도 이웃 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할 필요 없이 서양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대우하면 된다.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친구와 친해져서 함께 악명을 뒤집어쓸 이유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들을 멀리 해야 한다.” (시사신보,1895)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론脫亞論과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며 흉악한 침을 튀기고 있을 때 유키치보다는 30년 정도 앞서지만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한 지식인 혜강 최한기는 “모든 나라가 한 집이고 만억 생령이 한 몸이며”(…四大洲諸國 通爲一家 萬億生靈 通爲一軆… <人政>) “…남과 나는 비록 나뉘었으나 자연히 같은 바가 있는데 즉 천인 운화의 기가 그것이다. 이것을 들어 사무에 조처하면 남은 나와 같을 것이요 또한 나도 남과 더불어 같을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을 한 나라에 베풀면 한 나라의 사람이 가히 더불어 같아질 수 있을 것이요 그것을 천하에 베풀면 천하의 사람이 가히 더불어 같아질 수 있을 것이다.”(…人我雖分 自有所同 卽天人運化之氣 擧此而措處事務 人與我同 亦可我與人同 施之於一國 一國之人可與同 施之於天下 天下之人可與同…<氣學>)라며 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거이자 세계와 우주의 궁극적 실체인 氣의 자기운동인 運化의 개념을 통해 모두가 ‘더불어 숲’을 이루는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화폐는 모두가 욕망하며 일상적으로 주머니 속에 가까이 하는 물건이다. 거기에 어떤 인물을 새기느냐에 따라 즉 어떤 가치 지향과 세계관을 싣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이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전에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 (자유 liberté 평등 egalité 우애 fraternité)이 새겨진 프랑스 동전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우리 화폐에는 적어도 침략자의 얼굴은 받들지 않았다.

세종대왕, 율곡, 퇴계 모두가 우리 역사의 지적 정신적 슈퍼스타(?)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에 더해 우리도 화폐에 人乃天이나 弘益人間 등의 이념을 새겨 넣으면 어떨까? 그리하여 돈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하늘이며 또한 돈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相生의 끈이어야 함을 성찰하게 한다면? 그 아니 좋으랴!

<김다록 /자유기고가>


*본 칼럼은 지난 2020년 8월 작성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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