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간다면 바꿀 수 있을까 |
영화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명품이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빛과 어둠의 마술을 통해 현실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 영화는 세계를 기록하고 상상하는 기계 장치로 태어난다.
―네이버, 「영화의 탄생」에서 가져옴.
<김영호(설경구 분)>라는 사내가 있었다. 아니, 있다. 지금도 우리들 곁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을지라도 나는 그를 느낀다. 피부에 와 닿는 인물이다.
<김영호>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였다. <박하사탕>은 그렇게 내 곁, 나의 무의식으로 틈입했다. 앞서 인용한 자료를 빌리자면, 그는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그는 “빛과 어둠의 마술”과도 같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당신을 호명하듯 늘 그를 불러내면서 살았다는 것을.
누군가의 연대기는 고유한 삶의 여정이지만 텍스트로 기록된 바에는 증언에 다름 아니다. <김영호>는 나를 증언하고 있었고, 당신의 동의가 필요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이웃이 그러하듯 그는 섣불리 곁을 허용해서는 안 될 불순한 이방인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김영호>가 맞닥뜨린 삶,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버린 다음에 도피하고자 했던 현실은 불가항력적인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탓인지, 그의 절규를 나는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시간의 밖을 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 다시 돌아갈래!
그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했지만, 당신이 그의 절규를 들었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그의 기차는 거꾸로 달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전진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영호>가 긴급타전을 보내온다 해도 누군가는 수신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화는 “상상하는 기계 장치”로 그와 우리 사이에서 작동하게 된다.
다른 궤도를 달려가야 했던 <김영호>의 비루한 모습을,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건 거꾸로 달리는 기차에 동승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빛과 어둠의 마술”을 극복하지 못한다. 내가 빛 가운데에서 <김영호>를 바라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어두컴컴하고도 은밀한 구석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빛 가운데에 늠름한 모습으로 나에게 비쳐진 것 또한 아니었으니 이는 분명 마술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격동>의 시간
“마지막 돈 탈탈 털어가지고 이거(권총) 하나 구했소. 딱 한 놈만 죽이려고. 나 혼자 죽긴 너무너무 억울해서. 내 인생 이렇게 망쳐놓은 놈들 중에서 딱 한 놈. 근데, 어떤 놈을 죽일까, 그거 참 고민되더라고.”
피 같은 내(김영호) 돈 다 날려버린 증권회사 직원, 달러 빚 내주고 고리 뜯어낸 사채업자, 사기 치고 도망 간 동업자였던 친구……, 마누라랑 아이랑 함께 죽어버릴까. 내 인생 이렇게 조져놓은 놈들이 너무 많아가지고 그 ‘한 놈’을 못 고르는 <김영호>. 그는 도대체 누굴 죽여야 할까? 총알은 한 발밖에 없는데?
![]() 권총자살을 기도하는 김영호 |
1999년 봄. <김영호>는 마흔 살, 꿈도 야망도 친구도 가족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중년의 사내. 칩거에도 몹시 불편해 보이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는 그를 따라온 사내에 이끌려 죽음을 앞둔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이거 기억나요? 박하사탕. 나 옛날에 군대 있을 때 순임 씨가 이거 보내줬죠? 편지 한 통 보낼 때마다 하나씩 넣어가지고요. 그거 지금까지 다 모으고 있었어요. 사실은요, 이것 때문에 고참들한테 혼났어요. 편지에 이런 거 넣어갖고 보낸다고요. 보세요. 옛날 모양 그대로죠? 미안해요, 순임 씨.
품속에서 꺼낸 것은 오랜 세월 심장에 품고 살았을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물어보지만 박하향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 <과거>라는 시간의 회오(悔悟)들. <김영호>는 그녀 앞에서 더는 순수할 수가 없다. 도주한다. 그는 다리를 절름거린다. 순임―순수의 표상인 그녀를 마지막으로 잃었으므로 <김영호>는 완벽한 불구일 수밖에 없다.
기차는 그렇게 역주행을 한다. 그는 <순수>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간―삶을 그는 살아버렸던 것이다.
1994년 여름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87년 봄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84년 가을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80년 5월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79년 가을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어느 시간은 지나가지만 아직 거기에 머문 채 서성거리는 자신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해주고 싶은 안타까운 몸부림. 기차를 타고 먼 여행을 다녀본 당신은 알 것이다. 차창 밖 풍경이 달려가는 곳이 어딘지 쫓아가본 일은 없겠지만, 거기 오롯한 정경 하나쯤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는 수많은 <김영호>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 어느 <김영호>를 불러 밥 한끼 대접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그의 말에 귀기울여줄 여유도 갖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김영호>는 ‘현재진행형’이다. 당신의 과거가 호명할 <김영호>를 알아차리기에 충분한지도 모를 일.
<소외>의 시간
사랑도 열정도 식어버리고, 권태만 남은 일상의 <김영호>는 고문기술자였던 형사인 자신과 만난다. 그의 폭력성을 소환하는 고문피해자와의 우연한 조우는 뚱딴지 같은 독백으로 상식을 뒤집어버린다.
―삶은 아름답다.
이처럼 비상식적인 언술은 다시 없으리라는 듯 <김영호>는 아내로부터 문전박대 당하고 첫사랑 순임을 찾아 방황하게 된다. 번번이 비켜가버린 <순수>의 무지개인 순임은 <김영호>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박하사탕인데 말이다. 사진기를 들고 아름다운 들꽃을 찍고 싶었던 <김영호>는 어느 순간 행방불명된다. 고문하던 피의자가 겁에 질려 똥을 싸지르는 바람에 더럽혀진 <김영호>의 손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행방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씻어도 지독한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지우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은 그렇듯 고약하다. 그럴 때마다 <순임>은 무지개처럼 나타났고 금세 사라져버린다.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아이러니와 넌센스가 현실일지도 모른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 섣부른 성공과 좌절을 통해 제법 삶의 신비를 눈치채버렸음직한 중년의 사내에게는 이제 진선미(眞善美)가 새삼스럽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총을 들고 광주로 내려온 <김영호>.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에 피를 묻히고 만다. 끔찍한 <김영호>와의 첫 만남이었다. 순임이 선물했던 박하사탕들을 출동하면서 쏟아버린 순간부터 예고된 상실의 표상은 달리는 기차에 반영된다. 여전히 <기차>라는 역사는 삶을 역동하고 있지만 <김영호>는 기차가 달려가는 모양을 멀찍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제 마지막 기회를 얻기 위해 고향으로 간다. 아니, 맨 처음 삶이었다고 믿고 싶은 시간을 찾아 기차의 기억을 역주행해야 한다.
나 어떡해 / 너 갑자기 가버리면 / 나 어떡해 / 너를 잃고 살아갈까
야유회에 무단 침입한 <김영호>가 부른 노래의 가사이다. 나 어떡해? 노래는 물음도 절규도 저항도 아닌 읊조림으로 느껴진다. 관객으로 참여한 내게는 강 건너 사소한 사건처럼 비쳐진다. 절망조차 익숙해져버린 감상에 불과한 걸까.
그때 ―나(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김영호>라는 인물이 살아버린 시간이 묻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모년 모월 모시……마다 기차는 여전히 달린다. 탑승한 당신과 달려가 버리는 무정한 기차를 우두커니 바라볼 뿐인 당신이 똑같이 ‘박하사탕’의 맛을 되찾고 싶을지라도.
<기차>의 시간
그때 아름다움이 나를 / 깜깜하게 했네
아 희망은 절망의 속살
절망은 희망의 / 의상인 것을
아름다운 것은 절망인 것을
―김정환 시 「아름다운 절망」에서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삶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거야. 그래도 분명한 건 내게도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야. 학교를 다녔고 무식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만큼은 책을 읽었지. 추억은 누구나 윤색돼서 아름답기는 하지. 그리고 군대를 갔지. 또래의 청년들이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조금쯤 양심이 꺼리기도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그 날 밤의 광주는 의당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게는 다른 선택을 할 힘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 가책 따위에 허둥거릴 필요는 없는 거라고.
나중에 형사가 됐지. 정의와 진실을 운운하는 놈들을 잡아다가 족치고 고문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겠어. 그러니까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인간 있으면 나와 보라구. 난 그렇게 사는 게 일반적인 삶이라고 믿었을 뿐이야. 내게서 잔혹한 폭력성을 발견한 놈들은 과연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기만적인 삶의 영향은 폭력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웃기지 말라고 해.
한때는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 그러니까 이른바 가장이 된 거야. 열심히 돈을 벌었지. 물론 여느 사내들처럼 한눈 파는 일도 있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권총자살마저 실패한 비루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 누구 하나 측은지심으로 보아주는 인간도 없어. 완벽하게 실패해버린 인간으로서는 말종인 거지.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돼버린 걸까. 아무리 시간을 되감아보아도 뚜렷한 과오를 모른다는 게 더 어이없는 거야.
그런 내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기시켜주는 존재가 있는데, 순임이라는 여자야. 내 아름다운 첫사랑이었지. 그녀가 보내주었던 박하사탕 맛은 지금도 온몸을 맥박치게 하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녀를 떠올리며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거 같아.
![]() 순수했던 김영호의 한때 |
이제는 추악하고 진저리쳐지는 추억도 기억도 닫아야 해. 저기 기차가 달려오고 있거든. 내게 있었던 삶의 순간을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일깨워줄 오랜 시간이 다가오는 거야. 저 완벽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건 죽음이 아닐 거야. 그런데 말이야.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던 들꽃이 문득 생각나는군. 그리고 순임이가 또 그리워지는군. 그런 것들이 삶이었다고 해도 지금 나는 기차에 올라타야 해. 더 이상 기차의 꽁무니만을 바라보며 살지는 않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지. 하지만 그런 건 애당초 내 삶이 아니었나 봐. 그러니 이번에는 꼭 저 기차를 올라타고 말 거야.
이제 이 빌어먹을 세상은 나를 감쪽같이 잊어버릴 거야. 단말마로 남은 나에 대한 자취마저 유행가처럼 낡고 퇴락해버리겠지. 그리고 사라지는 거지. 감쪽같이. 이제 나, <김영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 자꾸 주절거리는 내가 싫거든. 불안했던 시간을 거슬러오는 <시간>의 다음은 어차피 무의미해지는 거니까. 그래도 모를 일. 어느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당신을 만나면 주머니에 그득 채워둔 박하사탕을 하나씩 던져줄게. 혹시 몰라서 당부하지만, 사탕을 얻으면, 미련스럽게 간직하지 말고 후딱 빨아먹어버려! 저기 기차 온다!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김정환 시 「철길」에서
당신들, 이제 안녕.
![]() 스무 살의 김영호 그리고 첫사랑 윤순임 |
감독: 이창동
출연: 설경구(김영호), 문소리(윤순임), 김여진(양홍자)
<채어린-자유기고가>
*본 내용은 지난 2020년 8월 기고문임을 알려드립니다.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12.08 (월) 1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