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불념구악(不念舊惡)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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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전산책> 불념구악(不念舊惡)의 정치

호타하에 던진 문서와 오늘의 정부
率性齋 金塗洙(솔성재 김도수)

[GJ저널 망치] 수(隋)나라 말기, 천하가 혼란하던 때 낙양을 거점으로 국호를 ‘정(鄭)’이라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킨 자가 왕세충(王世充)이었다. 그가 멸망하자 새로 천하를 통일한 이는 당나라 태종(唐太宗, 이세민)이었다. 태종은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했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덕으로 사람을 다스리려 했다.

왕세충을 평정한 뒤 태종은 그가 남긴 문서 꾸러미 속에서 반란 세력과 내통한 관리들의 명단을 발견했다. 그는 재상 두여회(杜如晦)에게 조사를 명했으나, 곧 “대신 중 한 사람이 자살하려 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태종은 즉시 그 문서를 가져오게 하여 직접 수백 겹으로 싸고, 돌처럼 무겁게 만들어 호타하(滹沱河, Hutuo River)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단호히 말했다.

“이 일은 다시는 논하지 말라.”

—《昨非菴日纂》(작비암일찬) 권17

그는 한때 적과 얽혔던 자들을 벌하기보다, 그들의 충성과 신의를 다시 세웠다. 태종은 죄의 기록을 강물에 묻음으로써 사람들의 두려움과 의심까지 씻어냈다. 이것이 바로 “불념구악(不念舊惡)”, 곧 옛 허물을 마음에 두지 않는 정치였다. 그 한 번의 결단이 훗날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이어졌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내란 동조 공무원 색출 TF’를 꾸려 과거의 일을 되짚고, 그 시절의 행적을 들춰 충성심을 재단하려 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발언이 행정 책임자의 입이 아니라, 국가 최고통수권자의 육성으로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정권은 바뀔 수 있지만, 공직은 국가에 속한다. 오늘의 충성 기준이 내일의 숙청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 현대사는 이미 그런 비극을 뼈저리게 겪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不念舊惡”이라 했다. 백이와 숙제가 주(周)의 곡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은 것은 원한 때문이 아니라 원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자는 남의 허물을 오래 마음에 두지 않는다. “사람을 믿고 세운다면, 어제의 잘못보다 오늘의 성심(誠心)을 보라.” 이것이 곧 공자의 도(道)였다.

태종은 반역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시기에 오히려 관용을 택했다. 그는 문서 몇 장을 강물에 던졌지만, 그 한 번의 행동이 수많은 인심을 되살렸다.

반면 오늘의 권력은 ‘문서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되파고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을 향한 공포정치를 부르는 길이다. 정치의 품격은 처벌의 엄함보다 용서의 깊이에서 드러난다.

태종이 강물에 던진 것은 종이 몇 장이 아니라, 보복의 마음이었다.

불념구악(不念舊惡) ― 옛 허물을 잊고 사람을 다시 세우는 정치야말로, 오늘 우리가 가장 절실히 되찾아야 할 통치의 덕이다.

率性齋 金塗洙(솔성재 김도수)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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