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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누추한 골목에서 신발을 삼으며 목이 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살아간 것은 저 조상의 단점이었지만, 만승(萬乘)의 임금을 한 번 깨우쳐 수레 백 대를 거느리고 돌아온 것은 저의 장점입니다.”
이에 장자가 단호히 꾸짖었다. “진왕이 병이 들면 의사를 부른다. 종기와 부스럼을 짜내는 자는 수레 한 대를 받고, 치질을 핥는 자는 수레 다섯 대를 받는다. 치료하는 부위가 지저분할수록 더 많은 수레를 받는 법이다. 그런데 자네가 백 대나 받은 것은, 진왕의 치질을 치료했기 때문이 아니더냐?” 《장자》〈열어구〉.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어 얻은 부귀는 치욕일 뿐이라는 일갈이었다.
이 고사는 오늘의 법정 풍경과 겹친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할 때, 그 말의 진정한 속내는 분명하다. “나는 정의를 위해 진실을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승소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진실만 내게 넘겨라. 그 값은 내가 정한다.” 변호사를 풍자하는 유머의 하나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진실은 법정에서 다뤄지는 가치가 아니라 흥정의 대상이 되었고, 재판은 정의를 밝히는 장이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는 전쟁터로 전락했다.
요즘 특검에서 드러나는 장면을 보라. 법정에서 오가는 말은 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교묘히 숨기고 왜곡하려는 술책으로 가득 차 있다. 국민은 정의를 기대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권모술수와 법 기술뿐이다. 같은 죄를 저질러도 유능한 변호사를 둔 자는 가볍게, 그렇지 못한 자는 무겁게 처벌받는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지금은 수임료와 변호사의 능력이 형량을 좌우한다. 법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윤리장전」은 “변호사는 공익을 존중하고 사회정의 실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현실 법정에서 공익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의뢰인의 이익만이 앞세워지고, 정의는 값싼 구호로 전락했다.
장자가 조상을 꾸짖었듯 오늘의 변호사들도 직시해야 한다. “나는 정의를 위해 변호하는가, 아니면 수레 백 대를 위해 변호하는가?” 이 질문에서 도망친다면, 사법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최근 어느 종교단체 총재를 위해 고위급 검찰·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줄줄이 나서는 모습을 보라. 그들의 변론은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인가? 진실을 밝히려는 것인가? 아니다. 수레 백 대 때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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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17.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12.08 (월) 1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