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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류학자는 20만 년 전 인간의 감정이 급속히 발달하는 시기가 있었고, 이천 년 전 축의 시대에는 이성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영성이 회자되는 시대가 되었다. 영성이 무엇이냐 하는 복잡한 질문들을 떠나서 인류 역사의 위대한 스승들 대부분이 강조했던 인간의 위대한 그 어떤 속성이라는 것을 후학들은 일단 느낀다.
감정에 의해 지배당해온 인류가 이성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웠던 것처럼 이성의 합리적 사유로 지탱해오던 것이 영성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캔 윌버는 합리적 사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칫 이성적이지 않은 두 가지 영역을 혼동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이성적이지 못한 미신적 전이성과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이성의 영역이 그것이다. 영성은 말이나 사유를 초월해 있는 인간의 속성이기에 경험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는 비이성적 분야다. 이성적 인간, 합리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해온 사람들은 흔히 전이성과 초이성을 구별하지 못한다. 전초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경시하는 것은 그 종교의 초이성적 면보다는 전이성적 병폐를 목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겁한 성직자의 책임이지 그 종교 교조의 철학이 아니다. 그러나 전초오류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합리성에 이르러야 초이성을 이해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성의 이해는 순수한 합리적 사유를 기본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전초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이성, 이성, 초이성의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초이성의 영역을 인지하는 것은 경험을 통하거나,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사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제는 철학자들의 일부도 영성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철학자는 부엉이라 감이 빠른 문학이나 과학의 주장들이 나온 후 한참 지나서야 울게 된다지 않은가. 그럼 이미 대중의 가슴에는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뜨거운 그 무엇, 영성이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로 영성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일반 대중들도 영성의 풍성한 정신적 자산을 공유하게 될지 모른다. 그 힘으로 전망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도 있다. 전초오류 때문에 지식인과 대중이 이런 기회를 외면하고 놓치는 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겠다.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현시대의 웃기는 모습들을 보면서 절망하고 괴로워했지만 이렇다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에 기대를 걸어보거나 종교를 다시 기웃거리고 동학의 서적들을 들춰본다. 21세기가 영성의 서막을 올리는 시대라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만만찮은 비판도 있을 것이다. 영성의 깊은 의미를 토론하기 전에 전초오류의 상식적 이해부터 마련한다면 그 장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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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성수도원장
진달래교회 담임 목사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12.11 (목) 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