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창 예술감독이 바라본 광주5·18, ‘평화’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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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동창 예술감독이 바라본 광주5·18, ‘평화’ 위한 ‘투쟁’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 아픔과 분노 넘어 ‘평화’를 담다
‘바람아’ 작사·작곡, 광주인권상 수상자 ‘벳조 운퉁’에게 헌정하다

[GJ저널 망치] 지난 2020년 10월 27일 5·18기념재단은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시상식 무대를 총 기획하고 지휘했던 임동창 예술감독은 이날 연주된 모든 음악을, 40주기를 맞이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새롭게 편곡하거나 창작하여 라이브로 선보였다.

이에 본지는 임동창 예술감독을 만나 그가 바라보는 5·18에 대한 의미와 그 의미를 담아 특별 기획·구성한 무대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었다.<편집자 주>

▲ 태곳적 광주를 노래한 '빛고을 아리랑'

어두워졌을 때라야 빛이 빚어낸 빛이 가슴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도 그렇다고 본다.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의 오프닝 음악은 ‘빛고을 아리랑’, ‘태곳적 광주를 노래하다’였다. 빛고을 광주에서 하는 행사이고 빛고을이 주체니까 국제적 행사라고 하지만 애국가가 아닌 ‘빛고을 아리랑’으로 한 것이다.

‘빛고을 아리랑’은 아쟁, 철현금, 바이올린 등 동·서양악기로 어우러진 나의 창작 오케스트라이다. 그날 오프닝에 오른 소프라노는 박성희 씨였다. 박성희 소프라노는 판소리계의 거장 임방울 선생의 손녀딸이었다.

박성희 소프라노뿐만 아니라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에 출연한 예술가들은 모두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자신들의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5·18광주, '평화' 위해 목숨 바친 싸움

5·18광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역사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태고적 광주가 군부독재에 무참하게 짓밟히자 죽음으로 항거했던 시민들의 5·18사진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화면에 띄웠다. 이때 편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80년 5월의 비극과 비애를 되새기는 무대였다.

그리고 5·18 영령을 위한 묵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묵념곡이 전부 양악임을 알고 있는가?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5·18 40주기를 기념하는 이번 광주인권상 시상식의 묵념곡만이라도 순수 우리 악기인 아쟁과 철현금으로 연주함으로써 ‘5·18 영령들만을 오롯이 기릴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


콘트라베이스가 ‘두우웅~따’ 아주 평화롭게 첫 음을 내며 시작되다가 갑자기 ‘퉁!’ 하고 끊어지는 음이 연주된다. ‘퉁’하고 끊어지는 소리는 이승에서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상징하는 소리이다. 어느 한 사람의 무고한 생명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어서 ‘띠이따~’ 높은 음이 나는데 이것은 육체를 벗어나게 된 놀란 영혼이 저승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평화를 위해 싸웠으니 저승에서 꼭 평화를 누리라고 아주 평화로운 가락이 흐르게 했다. 죽은 자들과 산 자들 모두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전반적으로 모든 곡들을 평화로운 가락으로 만들었다.

역대 광주인권상 수상자들을 소개하는 코너의 주제음악도 평화의 DNA를 가진 음악들이다. 이들이 겪었던 현실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근원은 저 깊은 영혼의 평화이기에 아주 잔잔한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 감동 그 자체, 2020 광주인권상 수상자 '벳조 운퉁'과 협연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2020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인도네시아 벳조 운퉁과 협연이었다. 코로나19로 오갈 수 없는 상황이라 전화로 벳조 운퉁과 소통하며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고르게 했다. 벳조 운퉁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우리의 ‘아리랑’ 같은 노래인 ‘젠저젠저(Genjer Genjer)’를 선택했다. 협연을 하기 위해 벳조 운퉁은 피아노로 ‘젠저젠저’ 연습을 했다. 어느 정도 연습을 마친 후 피아노 연주가 되자 그것을 영상에 담았다. 시상식에서 그 벳조 운퉁의 피아노 연주 영상에 맞춰 바람결오케스트라는 협연을 한 것이다. 감동 그 자체였다.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은 광주의 5·18 정신이 전 세계 민주화에 영감을 불어넣길 바라는 취지를 담아 기획됐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이 2020 광주인권상 수상국인 인도네시아에 연대를 보낸다는 메시지를 담았던 무대였다.

수상자에게 헌정한 음악 또한 평화의 염원을 담아 내가 직접 작사·작곡한 ‘바람아’였다. 벳조 운퉁과 YPKP65 단체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 5·18정신, '벳조 운퉁'의 활동을 통해 실현

벳조 운퉁은 1965~1966년 고등학생 시절 수하르토 군사독재정권이 좌익청산을 구실로 자행한 대학살을 목격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겪은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독재에 항거했던 그는 정치범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독재정권의 수배자가 된 그는 1970년 인도네시아 군사정보국에 붙잡혔다. 구금생활을 하면서 그는 전기고문을 당해야 했고 쥐, 뱀, 도마뱀, 곤충들을 잡아먹어야 했던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후 10여 년간 여러 감옥으로 이송되며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무급의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기도 했다.

외롭게 시작된 그의 긴 투쟁에 급기야 국제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1979년 10월 24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그는 드디어 구금생활에서 석방됐다. 하지만 석방 이후에도 옛 정치범임을 의미하는 특수코드인 ‘ET’가 기입된 신분증을 소지해야 했고 모든 이동 경로를 군 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하는 등 끝없는 사회적 구금과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벳조 운퉁은 1999년 4월 7일, 자신이 목격한 대학살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YPKP65를 건립했다.

이후 수마트라에서 자바까지 인도네시아 전역을 누비며 피해자들은 물론 희생자들의 가족을 만나 이들이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인 권리를 알렸다.

벳조 운퉁의 이 같은 활동으로 인해 이제 희생자들은 인도네시아 헌법에 의거 정부로부터 의료지원이나 심리치유를 받는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2015년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재판의 증인으로 참가해 증언하기도 했다. 이 재판에서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대학살과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있었다는 것이 공식 인정됐다. 또 인도네시아 정부에는 치유와 배상과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할 것과 인권침해를 다루는 특별법정의 설치가 권고되는 결실을 맺었다.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5·18정신이 벳조 운퉁의 활동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고 판단, 벳조 운퉁의 활동이 전 세계의 인권운동가들과 민주사회를 염원하는 시민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문규현 신부 등 심사위원들은 ‘2020 광주인권상 수상 결정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통한 한국 및 아시아 여러 국가의 이행기 정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책무 완성과 민주주의의 발전 및 인권신장, 그리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 눈물타령 이제 끝내야... 온전한 평화가 물결처럼....

이제 5·18도 40년이 훌쩍 넘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역사적 과제가 남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눈물타령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걸 모든 대중에게 요구해서도 안 된다. 5·18기념재단과 관련 단체들은 헌신하며 정치적·조직적으로 이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피눈물을 흘렸는가? 진정한 평화를 염원했기에 죽음까지 불사하며 항거한 것이다. 이제 온전한 평화가 물결처럼 우리 모두에게 흘러야 한다. 평화의 흥이 나와야 진정한 5·18 정신이 대중들에게서도 꽃피울 것이다.


*본 기사는 지난 2020년 11월 취재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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