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이 진짜 있어요? 순진한 물음에 감춰진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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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동 성폭력이 진짜 있어요? 순진한 물음에 감춰진 폭력

성인지 감수성이란?

[GJ저널 망치] 현재 필자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코로나 시대의 초등학생을 돌보고 있다. 때때로 강의를 하고 글도 쓰고 심리학적 이론을 내세워 아동의 문제행동을 진단하거나 양육에 훈수 두는 일을 주로 하지만 필자의 본업, 요샛말로 직업적 ‘본캐(本+character)’는 성폭력 피해 아동 청소년 지원기관의 임상심리사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만나 피해 후유증상을 평가하고 치료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필자의 직업을 묻는 사람들에게도 이처럼 대답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성폭력 피해 아이들이요?’라고 놀라거나, 미간을 찌푸린 채 슬픈 표정으로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다니’와 같은 경외의 말들을 내뱉는다.

전자 유형의 반응은 ‘성폭력 피해 아이들이 있어요?’ 혹은 ‘아동 성폭력이 진짜 있어요?’와 같은 순진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있으며 여성과 아이들을 향한 다양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는 혹은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방임과 방관, 부인(denial)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실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피해를 처음 보고한 이들에게서 그 말이 사실인지 의심하는 첫 반응에 큰 상처를 입고 피해 사실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서 자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피해자에 대한 혹은 피해자를 만나는 치료자에 대한 공감 어린 시선처럼 들리는 후자 유형의 반응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다니’는 어떨까. 대학원 수업시간에 있던 일이다. ‘상담의 첫 회기에 내담자와의 관계 맺기’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데 한 후배가 이야기한다. “성폭력 피해자인 내담자를 만난다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텐데 치료자가 경험해보지 못한 큰 슬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까요?”

초보 상담자의 기술적 미숙함 등은 차치하고, 이 따뜻하고 성실한 심리학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그 자신 안의 ‘피해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여간해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말들은 오랫동안 피해자들로 하여금 피해 사실로부터의 수치심과 자책감을 강요하고 침묵을 유지하게 했다.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 있는 피해자는 그 진정성을 의심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피해자다운’ 모습과 행동은 비단 피해 이후에 나타나는 모습에 국한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성별이나 연령과 같은 인구학적 특징이나 개인의 성격적 특성 등은 때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모 대학원 내의 성폭력 사건을 보자.

교수들의 미흡한 대처와 학교 당국의 미진한 대응 등이 도마에 오르내리며 지난 2년여 사이 몇 차례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다. 당시 공방 끝에 가해자의 무죄가 선고되자 학교 이미지 실추를 탓하며 피해 학생을 무고죄로 고발한 어느 교수의 고발문에는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하고 3개월이 넘은 시점에 신고한 점, 피해자가 원래부터 원우들과 술을 자주 마셨으며 가해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 성격이 강하다는 점’ 등을 들어 사건 발생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 꽤나 안다는 교수의 이러한 입장을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성폭력 대한 오해, 고정된 관념과 편견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피해자다움’을 규정한 후 이를 공감하고 치유하겠다고 다짐했던 후배의 예처럼 선의(善意)는 2차 가해를 예방할 수 없다. 성폭력 사건을 대함에 있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사건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성인지 감수성’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가해자 중심의 주장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를 뜻한다.

<다음 호에 계속>

염승희 임상심리전문가


*프로필
- 현)광주해바라기센터(아동) 임상심리전문가
- 전남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임상심리전공 박사과정




*본 칼럼은 지난 2020년 11월 작성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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