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찰] 생채기는 인간의 영광인가 현실이 곧 신화인 것처럼 방황하고 있는지?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
| 2026년 09월 08일(화) 1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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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살았고, 먼 여정에서 돌아왔다는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BC8세기경에 쓴 작품이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서사시의 분명한 상징과 기호들의 이미지를 현재성을 강화하면서 재구성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절대성과 기이한 비일상성에 분노하며 싸워야 한다. 신의 지혜를 빌려 탈출하고 때로는 타협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망각한다. 신화의 기술자는 그의 수많은 병사들을 죽였고 좌절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만, 두려움과 고통으로 <귀향>은 운명적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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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는 어디인가. 대한민국 땅 어디에 <이타카>는 있지 않을까. 나는 구글의 지도를 펼쳐 찾아보는데, 신화의 주소는 이미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오디세우스의 개 <아르고스>를 떠올린다. 나는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의 체취와 그림자와 그토록 선량한 눈빛을 기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아르고스>를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존재. 저 까마득한 시원 어딘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혹은 마당의 빨래처럼 펄럭이는 존재. 그를 찾아 나는 오늘도 귀향을 감행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의 기다림의 시간보다 더 질기고 오랜 인내의 시간을 뛰어넘는 그 힘을 나는 <아르고스>에게서 발견한다.
또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신들과 마주친 인간 의지를 통해 삶의 고귀함과 그 이유를 묻는다. 괴물들과의 싸움으로 저버린 수많은 죽음의 죄책감은 끊임없이 질문을 양산한다.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신들의 저주이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내린 벌이었다. 트로이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의지는 힘이 필요했다. 힘은 곧 신화의 완성이지만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비극이다. 세이렌의 유혹은 절대성을 지닌 절벽의 추락이어서 날개 없는 날개를 기어코 펼친다. 미약한 저항은 무한천공을 꿈꾼다. 그 추락에 대해 요정 칼립소는 '낙원'의 신이 될 수 있다고 꾀인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귀향의 운명처럼 불멸보다 필멸을 선택한다. 이때 서사는 돌올한 '존엄'을 슬그머니 드리워 놓는다. 그리하여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인간의 신화로 완성된다. 하지만 신들의 신탁, 괴물과의 싸움, 마법의 판타지는 귀향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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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곧 신화인 것처럼 방황하고 있는지?
신들에 저항한 생채기는 인간의 영광인지?
제우스의 <환대>를 받았는지? 그리고 베풀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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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등
채어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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