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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융합] 임신하는 남자

다른 종과 달리 수컷이 임신 역할 대신하는 해마
문정기 공학박사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6년 05월 07일(목) 16:25
수컷 해마는 암컷 해마의 알을 받아 자신의 뱃속에서 키워 출산한다. 경이로운 동물의 세계이다./Onebreathdiver
[GJ저널 망치] 얼마 전, 저는 ‘위대한 수컷 에뮤’를 떠올렸습니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존재. 그런데 바다에는 그보다 더 극적인 방식을 취하는 생물종이 있습니다. 해마다 같은 질문을 다시 묻게 하는 존재, 해마입니다.

해마는 다른 종과 달리 수컷이 임신을 합니다. 정확히는 그 역할을 대신하지요. 암컷은 자신의 알을 수컷의 배 주머니에 넣고, 수컷은 수정과 부화를 맡습니다. 수컷 해마는 몇 주 동안 산호나 해초에 꼬리를 감고 몸을 지탱한 채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진통을 겪듯 몸을 수축시키며 수십, 수백 마리의 새끼를 세상으로 밀어냅니다.

이 장면을 처음 알았을 때의 당혹감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역할’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구분이었는지를, 해마는 조용히 드러내지요. 자연은 역할을 나누되, 그 경계를 고정하지 않습니다.

몇 해 전 여름, 완도군 소안도의 해마 양식장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보전이 필요한 상태에 놓인 해마를 인공적으로 번식시켜 개체 수를 늘리는 곳이었지요. 그곳에서 저는 문득 묻지 못한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늘리고 있었을까. 암컷의 수였을까, 수컷의 수였을까. 아니면 ‘균형’이라는 더 근본적인 조건이었을까.

해마를 떠올리면, 생명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관계의 설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낳고, 누가 기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를 떠받치며 이어지는가의 문제.

바다는 그 답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문정기
공학박사
현 과문융합연구소 소장, (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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