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사람 될래!” 이계양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
| 2026년 04월 20일(월) 11:33 |
![]() 이계양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
지금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등지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이태원, 오송 지하도, 제주항공, 화성 아리셀, 대전 안전 공업 등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자국 이기주의와 각자도생을 위해, 오로지 ‘자국’과 ‘나’의 무사와 안일과 영달과 이익을 위해 소외와 배제, 차별과 혐오를 일상화하고 있다.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며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있다. 사회나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와 체제 담론에는 침묵하면서 개인적, 사소한 이익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타인의 고통과 사회정의에 눈뜨라는 지적이 통렬하고 아프다.
옹졸한 개인주의와 이기적 탐심에 사로잡혀 ‘사람임’을 망각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과 아픔과 고통의 의미를 방치, 무시, 무관심한 것은 결국 스스로 ‘사람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임’은 ‘사람됨’을 통해 가능하다.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때 그 상황에 맞는 필요하고 적절한 노릇(역할)을 제대로 할 때 비로소 사람임을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우린 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역사를 시작한 나라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도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교육 이념으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널리 사람을 이롭게’라는 말은 날줄과 씨줄에 걸쳐 인간 모두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당위이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인 나눔을 넘어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삶에 연결되어 무엇인가 기여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데서 남의 아픔에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때 모두가 이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 공동체가 지향할 궁극적인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하여튼 우리 민족에게 ’사람임‘은 ‘사람 모두를 이롭게’하는 것이라야 한다. ‘나만’ 이로워야 한다는 것은 ‘사람임’을 부정하는 일이니 여기에다 ‘사람됨’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정찬영은 “개인의 상처는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사회의 구조와 타인들의 시선이 겹쳐진 결과”라며, 고통의 연대성을 강조한다. 이는 “교육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 아픔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와 상통한다. 누군가의 불행, 고통, 아픔이 나의 문제임을 자각하고 우리 모두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최명란의 동시 중 “친구가 간지럼을 태워서 너무 웃다가/나도 친구에게 마구 간지럼을 태웠다/서로서로 간지럼을 태웠다/그러자 둘 다 별로 안 간지러웠다/우리는 분명 연결된 거다”(「우리」 전문, 『우리는 분명 연결된 거다』, 창비)가 떠오른다. ‘서로 간지럼을 태우면 간지러워도 안 간지럽게 되는’ 연결이 사람 관계요 사람됨의 본모습이어야 한다.
결국 사람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의 아픔, 고통, 상처를 경유해 ‘사람됨’이 가능하고, ‘우리’라는 공동체의 광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종착지는 명확하다.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며 그 연결성을 회복하도록 각성하는 것만이 사람됨을 완성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연대하는 공동체에 대한 간절한 바람은 오늘도 미완의 현재진행형이다. 내 아버지의 꾸중이 다시 들린다. “언제나 사람될래!”
이계양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