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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찰] 풍자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모던타임즈 (찰리 채플린, 1936)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년 12월 05일(금) 17:34
[GJ저널 망치] 시계―회전한다? 순환한다? 어떤 중심을 축으로 그어지는 궤적을 나는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 빈정거리는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시계가 재깍거리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당신도 그것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것이 빈틈없이 동일한 운동에 동참하는 장면들을 숱하게 바라보았다. 거기에 이상징후처럼 찰리가 등장할 때, 사실 그는 거기에 없던 존재이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잘 훈련 받았고 또 교육으로 단련된 이성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반복은 필연이다. 유구한 인류 역사는 그렇듯이 창조와 변화를 통해 근대에 이르러 속도를 요구했고 디지털시대에도 나는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당신도 오늘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자조하더라도 안녕의 기원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네 욕망이 섬뜩할 때도 있다지만 그건 역설적이게도 빵과 여권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중 하나는 꼭 역설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린 찰리는 신경쇠약에 걸려 무엇이든 나사처럼 조이려고 덤벼드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때의 강박은 신성한 질서를 모독하는 것이 된다. 제아무리 스패너를 비틀고 기름을 뿌리는 난동에도 찌그러진 시계는 돌아가듯이, 희극과 비극은 영원한 것이라고 설득하려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망언(妄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여전히 시계가 돌아가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비상계엄과 탄핵, 어이없는 죽음의 반복과 뻔한 농담이 선문답으로 횡행하는 세상에서 나는 영화가 던지는 은밀히 유머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어떤 기계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처럼 권위도 체면도 양심도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권력과 그 기득권 세력의 아전인수는 비극이지만, <모던타임즈>의 채플린은 비현실적인 인물을 현실과 충돌시켜 역사의 속성으로 폭로한다. 찰리는 ‘부랑자’나 ‘무산자’의 캐릭터인데, 방랑자의 비정상성에 대해 질서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요구한다. 욕망을 거세하고 세뇌하는 정당성을 구축하려고 하는 <힘>은 늘 그렇듯 합리적이며 합법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복종이 세뇌되어 만들어진 미래가 희망이 되고 빵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원에서 풀려난 찰리는 빵을 훔친 소녀를 도와주고, 백화점에 취직하고, 철공소에서 일을 하지만 결국 다시 떠돌이가 되는 현실의 자각은 결핍한 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소망일 뿐이다. 어리숙했던 찰리가 현실에 잘 적응한 것이라고 믿게 되지만 꿈과 환상은 비극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처럼 모순을 포착함으로써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지만 <힘>의 세력에게는 풍자도 피를 부르는 혁명도 단지 이데올로기적 농담일 뿐일지도 모른다.


김수영 시인의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라는 딜레마가 떠오른다. “폭력이 비애로 응결되는 과정에서 시인이 넋의 삶을 죽이고 육신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더러운 육신의 삶을 죽이고 깨끗한 넋의 삶을 택할 것인가.”

그러니까 나는,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이후의 나는, 21세기의 <모던타임즈>의 수레바퀴를 자각하면서 되뇌는 말이 생겨났다. “풍자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이때 비로소 찰리 채플린의 진지한 농담도 함께 곁들여진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그토록 위대한 조롱을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모던타임즈>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내 곁을 요란스럽게 통과해 가는지도 모른다.



감독: 찰리 채플린
출연: 찰리 채플린, 파울레트 고다드



채어린
자유기고가


*본 내용은 지난 2025년 2월 기고문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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