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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만나다

공자가 내 음악에 낙관(落款)을 찍어주다
공부는 ‘사람을 알아가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일’

GJ저널망치 gjm2005@daum.net
2025년 10월 28일(화) 16:48
2020 광주인권상 시상식에서 연주하고 있는 임동창 예술감독
[GJ저널 망치] <전편 1호에 이어>

▲ 비우자, 저절로 경지에 이르다

보이지 않은 음악의 어떤 본질을 찾기 위해서 피아노를 미친 듯이 두들겼고 천착해 들어갔다. 날마다 연습할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쳐댔지만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목이 타 우물을 찾듯 더 피아노에 매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필코 찾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에 손을 올려놓고 그냥 앉아 있었다. 연습이 버릇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손가락이, 온몸이 저절로 그렇게 미친 듯이 갈구하며 가 닿고자 했던 그 경지로 나를 데리고 갔다. 20대의 일이다.


▲ 공자가 내 음악에 낙관(落款)을 찍어주다

이후 작곡을 하며 오롯이 '내 음악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치 풀어야 할 화두(話頭)처럼. 그래서 20대 초반 인천 용화사로 출가를 했다. 당시에 또 나는 ‘나는 누구인가?’가 화두처럼 풀어야 할 과제였는데 출가 후 받은 화두는 '이 뭐꼬?'였다. 1년 반 참선을 행하다가 군입대를 하게 됐는데 제대 후 다시 용화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살아오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도 애를 썼다. 독불장군처럼 오로지 혼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이십여 년을 걸어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내 음악의 답, 얻고자 했던 그 어떤 것, 또는 삶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과 깨달음을 얻었다. 불혹이라 일컫는 나이였다. 내 음악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낙관을 찍고 싶었는데 찍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점검하고 인정해 줄 스승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그때 2천 5백 년 전의 공자가 내 음악에 낙관을 찍어줬다. 내 음악에 마침표를 찍어 줄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중, 한문을 전공한 어느 박사가 했던 ‘공자가 여자에 대한 말을 딱 한마디 했는데,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곁에 두면 불손하고 멀리 두면 원망한다는 내용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참 적절하다 생각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면서 공자의 말씀에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논어를 읽어보고 싶었다.

직역된 논어를 구해 7일 만에 독파했다. 공자가 내 음악에 대해 ‘허여(許與)’했다. 논어 첫 장을 읽자마자 바로 공자가 내 음악적 작업이 완벽했음을 인정해 주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인 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 不慍 不亦君子乎)”

나는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폼 잡으려고 음악을 공부한 게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기뻐서 하는 것이다. 한 번도 본 적도 없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내가 만든 음악을 듣고 좋다고 찾아온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 혼자 하는 것은 내면의 기쁨이고 뜻을 같은 사람과 만나면 외면의 즐거움이다. 즐거움은 얕은 것이고 기쁨은 깊은 것이다.

내가 하는 음악에 대해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럼 끝난 것 아닌가!

내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 낙관을 찍어준 것은 마지막 구절이었다.

▲ 공자는 내 친구(지기知己)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한 번은, ‘선생님은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셨길래 뭐든 막힘없는 대답을 하시는 거냐? 언제 그렇게 공부를 다 하셨냐?’고 묻는다. 그러자 공자께서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하나를 뚫어 전부 다 아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외, 제자 번지가 ‘인(仁)’과 ‘지(知)’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길, ‘사람을 아는 것이 ‘지(知)’,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仁)’이라고 한다.

모든 공부의 정점은 사람을 알기 위해서 한다는 뜻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공부의 궁극(窮極)이라는 공자의 사유체계, 깨달음의 세계, 통찰력의 세계를 만난 것이다.

2천 5백 년 전의 공자가 내 친구(지기知己)였다니!

▲ 하늘의 뜻을 살피고 나를 점검하다

한자를 하나도 몰라 옥편을 찾아가면서 또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면서 읽었다. 이어 맹자, 대학, 중용은 하루 만에 다 읽었고 주역은 4일 보고 끝냈다. 서(書)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면 된다. 그러나 경(經)은 영발의 세계이다. 귀신의 세계이다

첫 날, 주역 서문을 읽고 64개의 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책을 덮은 후 64개의 괘를 하나하나 그렸다. 책과 맞춰보니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렸더라. 그리고 곤괘(坤卦)까지 읽어 나가는데 이 책은 읽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을 덮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보광사 해우소에서 일을 보며 무심하게 숲과 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복희의 깊은 통찰을 만나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됐다. 그러고서 바로 점을 치니 '해괘(解卦)'가 나왔다. 모든 것이 다 풀린 것이다.

지금까지도 점을 치면서 하늘의 뜻을 살피고 있다. 또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맞나 물어보고 점검하면서 살고 있다.

▲ 완전히 다름으로, 곧 내 삶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예수, 부처, 공자, 노자 등 성인들하고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결정적일 때마다 이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

나처럼 특이하게 음악을 시작한 인간도 없더라. 또 나와 같은 과정을 거친 인간도 못 봤다. 그러니 결론도 당연히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그게 내 삶이다. 그래서 더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본 기사는 지난 2020년 11월 취재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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